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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일상에세이] 배려와 양보의 악용 (부제: 약자의 특권)

by artist_nao 201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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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터넷 쇼핑을 할 때 상품문의란을 보는데 아래와 같은 글을 볼 때마다 너무 화가 나곤 한다.


임산부니까 실한 걸로 보내주세요!

임산부가 먹을거에요~

특히 과일이나 채소, 기타 식품 문의란에는 도배가 되어 있을 정도다. 심지어는 '임산부에요' 한마디만 써놓은 글도 있다. 이걸 보는 '임산부가 아닌 소비자'와 '판매자'는 무슨 생각이 들까?

그럼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은 좀먹고 상태 안좋은 걸 먹어도 된다는 건가? 좋은 놈 다 골라 임신한 자기한테 주고 나머지 안좋은 건 다른 사람 주라는 건가? 식당에 가서도 임산부 먹을 거니까 좋은 걸로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남자가 '저는 남자니까 먹는 양이 많으니 2배로 보내주세요'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렇게 써놓은 임산부는 너무 이기적이다. 이는 대중교통에서 임산부석을 이용한다거나 자리를 양보받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대중교통은 정해진 자리가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자리를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라는 것, 누구나 자리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

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건 권리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앉아 있는 일반 좌석을 무작정 달라고, 나 임산부니까 일어나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임산부를 '배려'해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고, 꼭 그렇게 해야할 의무는 없다. 누구나 같은 요금을 내고 이용하는 것이고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양보할지 말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건 미덕이다. 그렇지만 이를 당연한 걸로 요구할 수는 없다. )

임산부이기 때문에 더 좋은 걸 골라서 먹고 싶다면 마트에 가서 직접 보고 실한 걸 골라오든지 아님 돈을 더 주고 '상'품을 주문하면 된다. 왜 남들이랑 같은 돈 주고 같은 상품 주문하면서 나 임산부니까 더 좋을 걸로 달라고 떼를 쓰는가?

나 대통령이니까 좋은 걸로 달라, 나 이런 사람이니까 어떻게 해달라. 힘을 가진 이가 자신의 특권을 이용해 불공평한 이득을 취하려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이니까, 임산부니까, 노인이니까 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특권으로 악용하려는 건 옳지 않다.


사회적 약자로 배려받는 것을 자신이 당연히 누려도 되는 '특권'으로 생각하지 말라.


이와 비슷한 예로 여초 직장에서 겪는 남자 직원들의 애환(?)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여자가 많기 때문에 소수의 남자 직원들은 힘쓰는 일에 자주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눈 내리는 날은 남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빗자루를 하나씩 들고 부리나케 나가곤 한다. 그럴 때 보통 여직원들은 미안하고 고마워 한다. 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몇몇 여직원들은 이를 당연히 여기고 오히려 남자니까 해주기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는데.. 남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본인들이 여자들보다는 힘이 세니 궂은 일을 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너무 당연히 여기는 듯한 몇몇 여자들의 태도에 종종 기분이 나빠진다고 한다.

(남-여의 차이와 차별, 사회적 편견 등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여자를 사회적 약자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사실 애매하지만..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로 여기고 당연하게 일방적 배려를 요구하는 여성들이 있으므로 위 예시를 들었다.)


또 다른 예로는 아이가 사고친 일에 대해서는 사회적 약자가 저지른 것이므로 문제삼지 않고 넘어갔으면 하는 부모들을 들 수 있겠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 아파트에 주차된 차를 긁었거나 기물을 파손했을 때 아이니까 용서해달라, 그냥 넘어가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떼쓰듯이 해서 넘어간다한들 그게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아이의 인성에도 악영향만 미칠 것이다. 자기는 약자니까 그래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은연 중에 들어 다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행동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배려와 양보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는 강자가 자신의 특권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굉장히 교묘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약자를 배려하는 게 맞고 분명 양보를 했는데 왠지 찜찜하고 심지어 불쾌하다면 약자로 위장한 누군가의 특권에 휘둘린 건 아닌지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 글은 브런치에서도 발행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artistnao/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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