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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포토에세이] 따뜻한 말 한마디 (부제: 위로라는 건..)

by artist_nao 201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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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기가 찾아온다. 

한때는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었다. 목표를 세우고 그걸 위해 계획을 짜서 하나하나 실천해나가고... 때로는 의지가 부족한 것 같아 내 자신을 질책하고 다시 힘을 내어 걸어나갔었다. 내 인생은 딱 내가 노력한만큼 결과를 가져다 주었고 부침없이 평범한 삶을 영위해왔다. 그 때는 사람들이 왜 쌍욕을 하는지, 쓰디 쓴 소주를 왜 마시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밀려들어온 파도에 피할 겨를 없이 몸이 말려들어 나도 모르게 생사에 갈림길에 서서 언제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를 기다린다. 나는 수영을 배웠지만 이것을 이겨낼 수 없다. 허우적대는 나를 보며 누군가 이야기한다. 넌 수영을 할 수 있는데 왜 나오질 못하니? 참 한심하구나.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가니? 의지박약이네. 

  


거친 파도에 휘말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파도가 끝날 때까지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말려있다 나오는 수밖에 없는 것을.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음을. 그 시간은 마치 지금부터 언제까지는 시련의 기간이야라고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아무 이유없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도 싫고, 힘없는 날 더 짓밟으려고 하여 차라리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거기에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고 후폭풍은 내 스스로가 감당해야만 했다.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깊이 만신창이가 되어 더이상 혼자 힘으로는 나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정말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내가 그 정도로 무언가를 잘못한 것인지..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것은 그야말로 갑자기 몰아닥친 파도와 같았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곤 했다. 심지어 날 힘들게 한 그들마저도 지나간 일은 다 잊어버리라고. 마음에 난 상처에 바를 약을 찾지 못해 나도 모르게 더 번지고 있는 그걸 그냥 없는 듯이 살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재빨리 응급처치를 했다면 빨리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진심어린 위로,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래도 살아보려고 이 시련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숨죽여 있는데, 내가 가장 믿었고 믿어야만 하는 사람이 내게 이야기한다. 한심하게 뭐하는 것이냐고. 왜 그렇게 사냐고. 니게 한 게 뭐가 있냐고..  이제는 털고 일어나야지 할 때마다 한번씩 나를 밟는다. 실수였다고 화가 나서 한 말이라고 심지어 그 자신이 한 이야기도 기억하지 못한다. 여러 번 반복될수록 내 영혼도 조금씩 죽어 가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다보면 중상을 입은 사람이 옆에 있는 이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오더라.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마음 한 구석에 그래도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의 가족, 친구, 내가 만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조심스럽게 해결책을 몇 가지 알려주기도 하였다. 그들이 힘들어하는 게 싫었고 안타까웠고 때로는 내 이야기로 인해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고마워하는 모습이 참 뿌듯했다. 또 내가 힘이 들 땐 도와달라고 하였고 세심하게 들어주는 이들도 있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여주는 관계에선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치유된다. 



우리들은 완벽하지 않았고 너무나 불완전 했기에 서로에게 위로가 필요했다. 



난 위로하고 위로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있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의지박약으로 비춰졌던 걸까. 모든 걸 혼자 해결해나갈 수 있다면 그게 맞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감정 역시 혼자만 누리는 것이라면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게 맞는 것이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하지 않나. 기쁨은 좋지만 슬픔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 감정을 나누길 싫어하면서 누군가와 같이 살려고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 내색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는 건 배려가 아니다. 아니. 감정이란 게 없는 것이다. 행여나 혼자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 해도 나에겐 서로 기대며 사는 나약한 인간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좋을 땐 좋다고 소리치고, 싫을 땐 격하게 싸우다가도, 힘들 때는 같이 울며 위로가 되고.. 그러면서 얼기설기 엮여지는 게 진짜 나의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정이 아닌가. 내 감정을 숨기고 억지로 참고, 힘든 일이 있어도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이건 가족과 친구와 맺는 관계 방식이 아니다. 그런 관계는 사회 생활로도 족하지 않나. 그래도 나의 사람들하고는 숨통이 트이게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싶다. 다른 이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위로'가 필요하다. 


때로 환경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우리를 괴롭히는 그것이 사람, 사회구조,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일지라도 '위로'가 있다면 인간은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힘든 건 같이 나누어 짊어져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위 글은 브런치에서도 발행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artistna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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