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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내 안의 힘으로

by artist_nao 2017.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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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 교사의 이야기,

더군다나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라 꼭 보고 싶었다.

사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 제목부터 맘에 들었다.

 

담겨진 내용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어서 처음에는 생각보다 싱거운 것 같았는데, 영화를 다 본 후 은근히 떠오르는 메시지가 명확해서 결과적으로 보길 잘했다 싶었다.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고등학교 철학 교사인 나탈리는 대학 철학 교수인 남편, 두 아이와 함께 사는 평범한 워킹맘이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자주 찾아가 돌봐주는 일이 버거워보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학생들의 보이콧으로 어수선한 학교에서 그녀는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화두를 던져주고 이야기의 장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름 잔잔했던 그녀의 일상에 돌 하나가 던져진다.

 

그녀의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것.

미리 눈치챈 딸의 충고로 남편은 그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별을 고한다.

늘 학생들에게 질문을 해야했던 그녀인데, 그녀의 삶에도 갑작스레 화두가 던져진 걸까?

이게 지옥의 문이 될지 탈출구가 될지는 그녀만이 알리라.

 

큰 충격임에도 덤덤하게 대처하던 그녀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아쉬워했던 건 더 이상 남편의 별장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가꾸어 온 정원,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들이 묻어나 있는 있는 그 곳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슬프게 만든다. 어느 순간 멈춰버린 남편과의 기억보다는 차곡차곡 쌓아왔던 자신만의 기억들이 더 소중했던 게 아닐까?

 

그녀에겐 가장 아끼는 제자 파비앵이 있었는데 그녀가 남편과 헤어질 때 즈음 파비앵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한적한 농가를 구해 공동체를 꾸린다. 짐을 낑낑들고 그곳을 찾은 나탈리는 마을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자신을 마중나온 제자에게 단언하듯 이야기한다.

 

나는 자유를 찾은거야.

한번도 겪지 못한 온전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고양이 '판도라'를 데리고 잠시 농가에 머무르는 그녀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분위기 속에서도 어쩐지 불안정해보인다. 알레르기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싫어했던 고양이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숲 속으로 사라지자 나탈리는 매우 불안해하며 밤새 판도라를 부른다. 아침에 되어서야 판도라는 쥐 한마리를 잡아와 그녀에게 내민다. 나탈리와 파비앵은 20년 넘게 집고양이로 지낸 판도라가 아직 야생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약간 놀란다. 여하튼 그녀는 이후 판도라를 꼭 껴안고 식구처럼 애틋하게 돌봐준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젊은이들을 보며 그녀는 자신도 한 때는 진보적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어쩐지 겉도는 그녀는 그래도 자신을 챙겨주는 파비앵에게 약간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계곡에서 사람들이 물놀이 하는 걸 지켜보다 파비앵과 그의 여자친구를 본 순간, 나탈리는 꿈에서 깨듯 벌떡 일어난다.

 

 

영화 후반부에 그녀는 '늙고 뚱뚱한 암고양이'라 칭한 '판도라'를 파비앵에게 입양 보내기로 한다. 의도치 않게 열린 판도라의 상자를 그동안 껴안고 있다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같은 제자에게 그걸 보내는데늙고 뚱뚱해서 볼품 없어진 겉모습은 이제 버리고(현재 그녀에게 닥친 그 모든 것들도!!!) 그 안에 아직 살아 있는 야생성 혹은 희망만을 꺼내온 걸까?

 



파리로 돌아온 그녀는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그녀 앞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원한다면 우리는 행복없이 지낼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기대한다.

만일 행복이 오지 않는다면 희망은 지속되며 
환영의 매력은 그것을 준 열정만큼 지속된다.

이 상태는 그 자체로서 충족되며 
그 근심에서 나온 일종의 쾌락은 현실을 보완하고 더 낫게 만들기도 한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덜 기쁜 법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

 

쥘리는 생프뤼와 함께 할 행복을 희망하다가 희망 자체로 행복해진거야
꿈을 현실로 대체하면서 만족할 수 있었던 거지
상상력은 순전히 정신적인 쾌락을 통해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상쇄하는데
일면 비현실적이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어
가상적 만족이 진정한 위안을 주고 그 위안은 관능적 쾌락을 보충하고 대체하는 거야.

 

 

영화는 나탈리가 갓난 아기인 그녀의 손녀를 안고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녀 앞에 갑자기 던져진 것들과 마주하며 혼란스러워하던 나탈리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그녀 자신 안의 힘, 그녀만의 상상력으로 다시 인생을 찾고자 한다

 

산고 끝에 얻은 예쁜 아기처럼 분명 새로운 인생을 얻기 시작했을 것이다.



위 글은 브런치에서도 발행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artistnao/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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