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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일상에세이] 평범한 전문가 (부제: 신발 가게 청년의 눈빛)

by artist_nao 2017.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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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목에 아울렛을 들렀다. 우리 동네에선 먼 곳이라 가기 힘들기도 하고 나름 괜찮다는 평이 많아서다. 무료 쿠폰북도 구하고 음료 쿠폰도 살뜰히 챙기고 여차하면 밥만 먹어도 되니 나쁠 건 없으니까.



서울 근교에서 좀 많이 떨어진 지역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넓고 점포도 많은데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는데 좀 휑하다 싶을 정도로 손님이 적었다. 우선 운동화를 보려고 스포츠 매장을 하나씩 들러보는데, 내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어려보이는 점원이 먼저 말을 건넨다. 사이즈며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젊은 청년의 눈빛이 참 초롱초롱하다. 이 제품은 어떻고, 저 제품은 어떻고... 사실 운동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몇 가지 용도별 디자인이 있다는 것밖에 없었다.



운동화 뿐 아니라 등산화나 구두 등 다른 종류의 신발까지 다 꿰고 있고 심지어 등산화를 살거면 어느 매장이 가성비 좋고 어쩌구 저쩌구 물어본 것 이상으로 대답을 척척 해주는데, 와~ 진짜 신발 박사 같았다. 사실 신발 매장을 많이 가봤지만 몇몇 신발 추천해주는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은데.. 그리고 사실 주인이 아니면 피곤에 지친 점원들은 대강 맞춰주기 마련이다.



덕분에 실용적이면서도 구하기 힘든 버젼의 희귀템(?)을 저렴하게 건져서 나오게 됐다. 너무 붙들고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 좀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는데, 그 청년은 신발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게 참 행복해보였다. 그 매장에 여러 점원들이 있었지만 일에 지쳐 피로해있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유독 반짝반짝 빛이 났다.



기분 좋게 새 운동화를 들고 나와 청년이 추천해준 등산화 매장에 들어가 이것 저것 살펴보는데 이번에는 어린 여점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맘에 드는 신발이 사이즈가 없어 안타까워하니 이 모델이 있는 다른 매장을 일일이 알아보고 연락처를 메모지에 적어준다. 우리 때문에 시간을 허비했으니 괜시리 미안해져서 필요했던 등산복을 살펴보고 두 개를 집어 골라달라 하였다. 딱 봐도 더 좋고 비싸보이는 걸 집으며 이게 더 소재가 좋지 않냐고 물으니, 오히려 더 저렴한 다른 제품이 이러저러해서 더 질이 좋다며 그걸 추천해주었다. 더 비싼 제품을 홀랑 팔아넘길 수 있는 기회일수도 있는데, 소신껏 추천해주는 점원의 눈빛이 아까 운동화 매장 청년이랑 정말 닮았다.



만족스러운 쇼핑을 뒤로 하고 집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나는데, 달리는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것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서 전문가가 되고, 갈고 닦은 실력을 다른 이를 위해 뽐낼 수 있는 사람.



돌이켜 보면 남들이 쉽게 될 수 없는 스포츠 스타나 배우, 혹은 저명한 사회 인사들에게나 해당되는 수식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회사에 다니고 주말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하기 싫은 일들을 버티면서 시간을 채워나가지 않나.



숨을 쉬는 게 너무 당연해서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내 일이 너무도 익숙해서 그것이 다른 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잊어버리고 산 건 아닐런지.



살면서 신발 가게 점원들을 수없이 만났지만 내가 만났던 신발 전문가들은 흔치 않았다.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면서도 너무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평범해보이지만 진짜 전문가가 아닐까.



위 글은 브런치에서도 발행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artistna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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