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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영화 <커피메이트>, 진짜 소울메이트는 내 안의 나

by artist_nao 2017.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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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완벽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교수님이 계셔. 경제적 풍요, 그림 같은 아내와 아이들... 한없이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늘 주변의 부러움을 사지.


그런데 말야.

그 교수님에겐 아무도 모르게 편지를 주고 받는 여인이 있어. 두 사람은 만나지도 않고 글만 서로 주고 받지. 이상하긴 하지만 어쩐지 나는 이해가 가기도 해..."


영화 <커피메이트>의 줄거리를 봤을 때 몇 해 전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육체적 관계 없이 단지 두 남녀의 '대화'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홍보에 관심이 갔으나, 사실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감독이나 주연 배우, 또 그동안 제작되었던 비슷한 한국 영화들의 스타일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래 내용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영화는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두 남녀 주인공의 대화 사이사이 그들의 과거 이야기가 끼워져 있어서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그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간 같은 카페에서 자주 마주치던 여자에게 말을 건넨 '희수'는 맘에 드는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여느 남자와 별로 다를 게 없어보였다. 평소 그를 의식하고 있었던 '인영'은 어색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목수인 '희수'와 평범한 가정주부인 '인영', 둘은 그저 평범한 남녀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서로 털어놓으며 자기 자신도 잊고 있었던 모습들을 꺼내보이기 시작한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늘어진다 싶으면 한번씩 두 남녀의 과거 회상씬이 등장한다. '희수'는 본의 아니게 첫사랑이었던 여자친구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이 있고, '인영'은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껴 일부러 상처를 주려 했었다.








삐그덕거리는 의자처럼 살짝 모가 나있는 그 기억들은 그들의 깊은 곳 어딘가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둘은 마치 없는 것처럼 밑바닥에 깔려있던 그것을 건드려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그 과정은 둘에게 외부와 유리되는 벽을 만들어주었고, 그들은 그 곳으로 도피하여 마음껏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즐겼다.


카페에서만 만나고 단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로 만 지내자는 약속은 이내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희수'는 그녀 몰래 그녀를 뒤따라 걷기도 하고, '인영'은 의사 아내로서 여유로워 보였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영화의 구성은 굉장히 단순하고, 장소도 아주 제한적이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심리나 소품, 에피소드 등을 세밀하게 잘 엮어 지루함을 피한다. 물론 그것들이 다소 상투적이고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뻔한 한국식 드라마나 멜로가 아니어서인지 끝까지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두 남녀의 '대화'로 발전된 '관계'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진 않아 보인다.


'인영'의 입장에서 보면 '희수'는 그녀 내면의 진짜 모습을 찾아준 은인이지만, 어찌보면 멀쩡히 잘 살고 있던 그녀를 흔들어 이혼녀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녀가 스스로 만족한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180도 달라진 그녀의 모습이 좀 찜찜하긴 하다.


'희수'도 어딘가 이상해보이는 점이 있다. 과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신사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데 결국 '인영'을 흔들어 놓고, 그녀의 남편이 협박(?)을 하니 깨갱하며 미안하다는 말로 관계를 끊는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진짜 나쁜 남자다. 또 새 삶을 얻은 '인영'과 달리 그가 얻은 건 딱히 없어 보인다.


결론적으로 두 남녀는 영화 속 대사처럼 서로 지니고 있는 파장이 비슷해서 끌렸고, 잠시 관계가 끊겼으나 결국 둘은 다시 만날 거라는 암시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주된 메시지를 찾아보자면

'인영'의 커피메이트는 결국 자기도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진짜 '나' 였다.

정도가 아닐까.








그녀는 자신의 귀와 입술을 뚫는 극단적인 행동 이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상처가 곪았다가 새살이 돋아 아물어감과 동시에 그녀의 삶도 생기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를 전달하기 위해 굳이 '대화'라는 틀이 필요했을까? 영화에서 두 남녀의 '대화'는 단지 '인영의 각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매력적인 형식을 가져다가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게 아쉽다.


둘의 '대화'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처럼 제대로 된 진한 원두커피가 아니라, 응어리 진 미숫가루처럼 느껴진다. 특별한 공감 없이 서로의 치부를 나열하듯 고백하는 식의 대화가 아닌 정말 잘 통하는 두 사람이 진중하게 교감하는 그 즐거운 순간의 대화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지인으로부터 교수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분이 주고 받았다는 서신 속 내용이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두 남녀 간의 '대화'는 사랑의 속삭임, 혹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깊은 공감, 깨달음을 위한 생각의 나눔 등의 다양한 각도로 다룰 수 있고, 대화가 오고 가는 그 순간의 힘과 균형이 분명 존재한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성장 배경이나 심리 등에 안타까운 시선은 가지만, 독백과 같은 이야기나 시덥잖은 놀이 등이 어쩐지 겉도는 것은 '대화'라는 탈을 쓰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위 글은 브런치에서도 발행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artistnao/40/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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