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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의 일기

9월 13일(수) 나를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by artist_nao 2018.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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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를 받는데 선생님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물어보셨다.

난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술술 사생활을 잘 이야기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초면에 아이 낳고 싶어서 결혼했는데 4년 동안 별짓을 다해도 애가 안생기고, 우울증에 자살 시도까지 하고 일도 하다말다 했다고 어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실 몸 근육을 잘 아시니 얼굴 근육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다. 같이 난임이었던 친구가 임신 생각 접고 주기적으로 턱보톡스를 맞다 덜컥 임신이 되길래 뭐에 홀린 듯이 나도 진짜 딱 한번 맞아봤는데 재수없게 부작용이 와서 얼굴이 10개월째 병x같다고 어떻게 이야기해. 그래서 사람들 눈 마주치는 것도 힘들다고.

처음엔 그냥 벌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남 아프게 한 적 있었을테니까 벌 받는 거라고. 그치만 정말 반성할테니까 착하게 잘 살테니까 얼굴 이거 흐물거리는 것만이라도 어떻게 좀 안되겠냐고.

그래도 불면증으로 심장 이상으로 잠 못자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지.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더 이상 힘들다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다.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고 몸도 마음도 많이 회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은 정말... 매번 가리고 다닐 수는 없잖아.

그냥 건강 때문에 휴직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인바디 결과를 보고 이런 건 처음 본다고 너무 말랐다고 하셨다. 성격이 예민한 것 같다고. 맞다고 했다.

나보고 스트레스 받는 게 있냐고. 오늘은 어떤 생각을 하냐구 하셔서. 순간 울컥해서 나불나불 내 치부에 대해 이야기할 뻔 했으나 당장 생각나는 ‘집에 가서 냉장고 정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내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들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야기 풀면서 예민한 내 성격도 풀어버리고 또 예민하게 긴장된 흉쇄유돌근도 풀어주시려 하셨다.

몸과 마음은 같이 가나보다. 내 마음이 편치 않으면 내 몸도 계속 병x같을 거다. 인생이 힘들어지면 욕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걸 4년 전 처음 알았다. 소주가 달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자존감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생이 재미없어진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떻게 하면 해결될지 알고 있는데 나는 용기가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sos를 요청했지만 수없이 거절당했다.

오늘 처음 수업을 해주신 PT선생님은 지난 번 상담 이후로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고. 무슨 생각을 그리 하냐고. 그 몇 마디 말이 정말 위로가 됐다. 내가 좀 불쌍한 것 같았어.

얼마 전 오랜 친구가 나는 더 망가져도 된다고. 백번 더 망가져도 예쁠 거라고 해줬다. 오늘은 또 나의 내면도, 내가 가진 생각들도 예쁘다고 말해줬다. 그냥 눈물이 났다.

지난 주엔가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관해 오래 전 올렸던 글에 어떤 학생의 어머니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다. 자녀가 우울증을 겪는다고. 그래서 최대한 자세히 댓글을 달아드렸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그 날 저녁 남편과 밥먹다 말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 때 많이 힘들었는데 그냥 자기가 괜찮다고 한 마디 해줬으면 참 좋았을텐데, 누군지도 모를 그 학생을 생각하니까 정말 힘들겠다고 난 이해한다고 그리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남편은 어두운 표정으로 자기도 정말 힘들었다고 그 특유의 단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수없이 봐서 정말 익숙한 표정이다. 화난 듯 인상을 쓰는 저 얼굴을 볼 때마다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자기도 처음엔 위로를 했지만 반복되니 지겨웠다고 했다. 난 처음부터 진심을 느끼기 힘들었다. 급기야는 죽으려하는 날 협박하고 우는 나에게 늘 화를 냈지. 그냥 내가 그럴 땐 말없이 안아만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지만 그게 그렇게 어려웠나보다.

나도 안다. 내가 정말 질리게 하고 그래서 지쳤을 거라는 것. 3년이 지나고 4년째 접어들면서 내 감정을 죽였다.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쉬운 일이다. 그리고 힘들고 짜증스러운 감정을 최대한 내비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그런 내색을 싫어했으니까. 지금은 잘 지낸다. 정말. 내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걸까?

그 학생을 생각하면... 자꾸 죽고 싶다고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아. 정말 당장 죽고 싶은 거라면 그런 말을 필요치 않지. 그냥 바로 죽으면 되니까. 자꾸 이야기를 하는 건 나 좀 살려달라는 건데... 내 스스로 안되니까 제발 좀 도와달라는 건데.. 사람 살리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 나에 대해서 정말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구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만으로도 나는 살 수 있는데.

좋아진 줄 알았는데 앙금처럼 무의식 어딘가에 남아있는 듯하다. 그냥 내 감정을 죽이고 무뎌지고 남편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만 내가 살아갈 수가 있다. 그렇지만 나도 사람인데..

누군가 따뜻하게 대해주면 난 비참해진다. 나와 친밀한 관계가 아닌데도 말 한마디에 걱정이 묻어나고 표정 하나에서 진심이 느껴지면 내 현실이 떠오르기 때문에.

나는 영영 옆 사람으로부터 그런 위로를 얻을 수가 없으니까 자꾸 그런 게 날 자극할수록 난 더 힘들어지고 비침해진다.

영화나 책, 공연... 자꾸 내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을 보기가 힘들고 불편해진다. 저 안쪽에 쳐박아두고 묻어버린 것들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래서 더 아이를 갖는 것에 집착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내 가족을 원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 놓아버렸다. 그것마저도. 어차피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러나 저러나 우울한 생각은 떨쳐버리자. 어차피 산다는 건 별 게 아니다. 그냥 하루 하루 시간이 흘러가는 거야.

날 불쌍하게 생각하자. 나를 좀 더 사랑해주고 예뻐해주고. 내 마음을 내가 알아주면 되잖아. 이제 힘든 시간은 다 지나갔다. 그렇게 죽고 싶은 시간들은 오지 않을거야.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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