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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의 일기

3월 15일 (목) 전화위복, 내 인생의 모닝콜

by artist_nao 2018.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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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척 피곤하다. 매우.

일단 소화가 잘 안되고 예전처럼 장 활동이 활발하지가 않다. ㅜ 그래도 어제 우유에 발효식초를 타서 요거트처럼 마셨더니 좀 낫긴 하다.

일년 쉬었다 와서 그런지 재작년 하반기 복직 때보다 훨씬 힘이 든다. 오후에는 너무 졸려서 혼났다. 조퇴를 쓰고 싶었지만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가기도 했고 지난 주에 병가를 썼는데 또 쓰겠다는 말씀을 도저히 드릴 수가 없었다. 그냥 웬만하면 조퇴하지 말고 업무 보고 수업 준비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수업 자료를 만들기로 맘 먹었다. 어차피 집에 가면 잘 안하게 되니까.

어제는 클라이밍 시작한지 얼마 안된 윤아씨랑 친해져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갤러리를 운영하는 친구이다. 단골이라는 밥집에서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갤러리 구경을 했다. 드로잉, 설치 작업 다 좋았지만 특히 캔바스 틀을 이용한 반입체 작업이 정말 맘에 들었다~

암장 바로 옆이기도 하고 종종 들러야겠다. 윤아씨 드로잉도 살짝 봤는데 색감이나 형태가 감각적이고 다른 작업도 궁금했다. 명색이 미술교사인데 전시를 너무 안보는 것 같다. 아아.. 그림도 손 놓은지 꽤 됐고. 반성하게 된다.

같은 미술 전공이라 그런지 이야기도 굉장히 재밌었고 즐거웠다. 작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건 정말 오랜만이다. 대입 수시 준비하며 썼던 나의 야심찬 자기 소개서 내용이 떠올랐다. 세상의 진리를 찾고 또 그걸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다며 작가를 꿈꿨었는데... 지금 교사의 길을 간 걸 후회하진 않는다. 내 성향이 매우 잘 맞고 보람이 있다. 그래도 항상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다. 작업에 대한 이 애증의 마음.

저녁에 보톡스 부작용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요 며칠 희망을 가지고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 일과 시간에도 그렇고 집에 와서도 그렇고 눈밑이 더 꺼져서 인디안 주름이 더 심하게 져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참았던 게 폭발한 것 같다.

어제만 해도 마음 정리를 다 했었는데.. 정신과 진료 받으러 가서도 생글생글 웃으며 선생님께 약 안먹어도 잘 자고 기분도 좋다고 좋아졌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게 미세하게 더 안좋아지니까 마음이 또 무너진다.

병원가서 다 뒤집고 깨부순 다음에 변상할까도 생각해보고, 주사 놔준 의사 얼굴 붙잡고 똑같이 보톡스 놔줘서 부작용 겪게 만들고 싶고, 그냥 다 죽이고 나도 죽자 그런 욱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봐야 나만 더 화날 걸 아니까... 이미 두 번 병원 가서 이야기 했었지만 별다른 방법도 없었고 그냥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매일매일이 오늘이 바닥이라는 생각. 이제 제발 멈췄다가 돌아왔음 좋겠다. 당분간 더 안좋아질 수 있지만 정신줄을 잡아야만 한다. 안좋아지더라도 나중엔 돌아오니까 지금보다 나아질테니까 견뎌야 한다.

그리고 분명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1. 이번 일을 계기로 남편과 사이가 좋아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었고, 남편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밝은 미소와 따뜻함이라는 걸 알에 되었다.

2. 이번 일을 계기로 자살 충동이 확실히 줄었다. 살고 싶어졌고 일상의 소중함, 건강(몸과 마음)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3. 학교 수업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얼굴을 잃고 교수법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고, 또 무심코 했던 외모 관련 발언을 굉장히 조심하게 되었다. 외모와 관련된 칭찬보다 행동을 칭찬해주자.

4. 얼굴보다 내면을 가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한 마음을 외모에 치중하는 걸로 달래는 건 부질없다. 나이가 들어 외적인 아름다움을 잃었을 때 나에게 무엇이 남는가. 가족과 친구들, 학생들, 또 다른 이들을 감화시키는 건 외모가 아니다. 그 사람의 따뜻한 성품과 전문성이다.

5. 이번 일은 내 인생의 모닝콜이다. 나태하고 게을렀던 생활을 청산하고, 예민하고 부정적인 성격을 고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뤄왔던 일들을 시작하자.

6. 얼굴 근육의 중요성과 모든 인위적인 시술이나 성형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얼굴이 돌아온 후에도 근육 운동을 꾸준히 해주면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번에 부작용을 겪지 않았다면 분명 또 각종 시술이나 성형의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7.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이번 일을 겪으니 웬만한 일은 대범하게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또 짜증과 불만이 많았는데 놀랄 정도로 없어졌다.


쓰고 나니 무려 일곱 가지나 된다. 비록 스트레스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번 일이 분명 앞으로 닥쳐올 수 있는 인생의 고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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