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오의 일기

2월 28일(수) 인생의 바닥에서...

by artist_nao 2018. 2. 28.
반응형

2017년을 너무 힘들게 보내고 2018년을 맞이했다. 

남들은 내가 부족함 없이 잘 사는 줄 안다.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또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참 평탄한 삶이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결혼 이후부터 내 삶이 망가진 것 같다. 누굴 탓하려는 게 아닌데, 생각해보면 극명하게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금 이 순간 바닥을 치고 있다. 애를 가지고 싶어서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남편과는 매일 싸우고... 거의 매일을 눈물에, 발악에, 공황 증상에, 자살 시도까지... 그 와중에도 애를 갖고 싶어서 일을 쉬었다. 거의 3년 간을 쉬면서 병원을 다녔다. 연이은 시험관 실패와 스트레스로 충동적으로 친구따라 턱보톡스를 맞았고, 심한 부작용으로 하루하루 기괴하게 바뀌어가는 얼굴에 급기야는 심장 두근거림과 불면증까지 왔다. 

자려고 누웠는데 어떤 기운이 심장을 쳤고, 그 이후로 백미터 달리기를 한 직후처럼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 심전도 검사를 받았지만 정상.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추정. 심장 이상과 함께 열이 위로 계속 올라와 두통, 입마름이 계속 되었고, 약 보름 간을 잠을 한숨도 못잤다. 잠깐 누웠다 일어나는 느낌이었는데 뇌 자체가 24시간 전투모드여서 항상 예민해져 있는 느낌이었다. 살도 쭉쭉 빠졌다. 자려고 누우면 열감이 솟구치고 심장이 터져서 멈출 것 같은 느낌에, 저릿하고 이상한 열감이 온 몸을 타고 돌아다녔다. 

홧병, 상기증, 교감신경항진증, 자율신경실조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이름만 다르지 다 비슷한 증상... 

심장 뛰는 것, 잠 못자는 게 너무 무서워서 다음 날 바로 제주도 친정집에 내려갔다. 남편은 일이 바쁘기 때문에 혼자 있다가 심장 멈출까봐 그게 너무 무서웠다. 부모님께서 이런 저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나도 마음을 내려놨다고 생각했다. 근데 내 몸은 한 달 넘게 긴장 상태였는지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부작용을 이겨내야 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끊임없이 검색해보고 노력하고 이런 저런 시도도 해보고... 그런 스트레스들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잠도 푹 못잤던 것 같고,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에는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참 행복했었는데... 그 뒤로는 소소한 즐거움들을 모두 잊었던 거다. 


극초기 유산으로 한약을 지어 먹었던 한의원에 급히 연락을 해서 상기증을 가라앉히는 약을 받았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잠을 못자도 죽지 않는다고 운동하고 편하게 지내라고 하셨다. 그 맘 때쯤 제주에 폭설이 내렸다. 어느 날 아침, 물론 전날 제대로 못잔 상태였지만, 눈이 왔지만 가슴이 열기로 터질 것 같아서 찬바람이라도 쐬야할 것 같아 나가서 걷는데..  밤새 하얗게 내린 눈,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가만 가만 걷는데 그 순간 아무 걱정도 불안도 생각도 없이 마냥 좋았다. 어린 아이처럼... 이런 기분을 언제 느껴봤던 걸까...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됐던 것 같다. 

인간의 뇌에는 3종류가 있다는데, 하나는 제 1뇌 전두엽, 또 다른 하나는 일명 강아지뇌, 나머지는 파충류뇌라고 한다. 나는 그동안 강아지뇌로 살아온 게 아닌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방어, 긴장. 나에게는 파충류뇌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본능대로 먹고 자고 느끼는 것. 생각없이.


며칠동안 눈을 밟는 게 정말 행복했다. 걷고, 뛰고, 무척 추웠지만 심장이 쿵쿵 뛰는 게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게 행복하고 감사했다. 한 때는 삶의 의미를 잃어서 죽고만 싶었는데... 진짜 심장이 죽으려고 하니까 내 몸이 이상이 오니까 그냥 살고 싶어졌다. 보름 넘게 잠을 아예 못자니까 하루만이라도 푹 자고 싶었다. 중병에 걸리면 그런 느낌일까 정말.. 하루만이라도 맛있게 먹고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자는 것. 

평소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것들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하루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왔는데 그 날 저녁 이상한 증상들이 너무 심하게 나타났다. 매일 밤을 공포로 보냈는데... 보톡스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서 이제 수면과 몸의 증상에 대한 불안으로 옮겨갔던 거 같다. 다음 날 안되겠다 싶어서 신경과에 갔다. 심장 문제 같으니 심장과에 먼저 가보란다. 심전도 결과 정상. 신경안정제와 맥 늦춰주는 약을 받아왔다. 

그런데 그 날 오후,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이전의 엄청 편했던 심장박동의 느낌으로 잠시 돌아오더니 엄마 옆에서 나도 모르게 스스륵 낮잠이 든 것이다. 비록 한 두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놀라웠다. 그 날 내내 나도 모르게 콧노래도 부르고 기분이 참 좋았고 편했었다. 그 날 밤 조금은 불안했지만 정말이지 푹 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빠를 껴앉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행복해서...  

물론 다음 날부터 다시 불면의 밤이 시작됐지만... 


다음 주면 세 달이 된다. 세 달 이후부터는 좋아졌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화위복이 될 거라 생각한다. 많이 힘들고 불안하고 공포스럽지만, 또 이 와중에 하필이면 복직하여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지만, 다 잘 될거다. 그렇게 믿고 생각하자. 그래야만 한다. 


일단 마음이 편해지고 건강해지면 다른 것들도 모두 좋아질 것이다. 



반응형

댓글